9회말 홈런으로 역전 노린다…이마트 '초강수'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입력 2023-11-15 11:57   수정 2023-11-15 15:18

관중은 반전에 매료된다. 9회 말 투아웃 만루홈런처럼 짜릿한 뒤집기를 좋아한다. 지금 한국 유통 산업에서 ‘반전 스토리’의 주인공을 꼽으라면 단연 이마트일 것이다. 1993년 창동점에 1호점을 연 이래 이마트는 30년 생일인 올해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매출로 쿠팡에 1위를 내줬고, 급기야 10월 말엔 실적 부진의 책임을 물어 이마트 대표를 교체했다. ‘읍참마속’에 비견될 정도의 인사였다.

이마트가 해결해야 할 눈앞의 과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마트의 한채양 신임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본업 경쟁력의 회복’을 천명했다. ‘리스토어(Re:Store, 다시 매장으로)’가 앞으로 이마트가 가야 할 길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G마켓과 SSG닷컴을 중심으로 알리바바식 넓은 온라인 유통의 투망을 던지려 했던 강희석 전 대표의 전략과 비교하면 급격한 선회라고 할 수 있다.
'바잉 파워' 회복에 집중하겠다는 한채양
한 대표가 가야 할 길은 한국 유통 산업의 미래와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소비자가 매장에 다시 방문할 이유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창업에 준하는 실험이다. 한 대표가 천명한 대로 이 같은 혁신이 성공하려면 어쩌면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예산 시장을 완전히 변모시킨 것을 뛰어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현대백화점이 ‘리테일 테라피(일상에서의 일탈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 창출)’ 개념을 도입해 더현대서울을 여의도의 명소로 만든 것처럼 말이다.

이 같은 창의적 혁신은 역설적으로 이마트여서 더 힘들다. 이마트의 핵심인 MD(상품기획자)들은 그들 자신이 오프라인 유통의 최강자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이마트 MD의 머리와 수첩엔 온갖 상품별 전국의 납품업체 명단이 빼곡하고, 매대에 언제, 어떤 상품이 올라가야 매출이 오르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강희석 전 대표는 MD들에게 빅데이터 분석이라는 첨단 도구까지 안겨줬다.

하지만 MD의 경쟁력이라는 기준에서 이마트가 쿠팡을 압도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미 쿠팡은 이마트 매출을 넘어섰다. 3분기 매출만 봐도 쿠팡이 분기 사상 처음으로 8조원을 넘은 데 비해 이마트 매출은 3조2159억원에 불과했다. 유통은 기본적으로 많이 파는 곳이 힘을 갖는다. 이를 ‘바잉 파워’라고 한다. 그래야 납품업체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취할 수 있고, 최대한 낮은 가격에 제품을 공급받아야 마진을 많이 남길 수 있다. 이는 영업이익으로 직결된다.

한 대표가 2019년 이마트 첫 적자 이래 멈춰 서 있던 매장 출점을 재개하고, 이마트와 이마트에브리데이(대형슈퍼마켓), 이마트24(편의점)의 통합 소싱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은 바로 MD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CJ제일제당, LG생활건강 등 소위 반(反) 쿠팡 진영과 연대해 사실상 쿠팡이 거머쥔 가격 주도권을 되찾아 오기 위해서라도 바잉 파워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 한 대표의 전략이다.
이마트의 9회말 2사 만루홈런 가능하려면
공급자 중심의 유통이란 관점에 보자면 한 대표의 전략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긴급 구원 투수로 투입된 전문 경영인으로서 이만한 도전 과제도 없을 것이다. 한 대표는 신세계그룹 내에서 기획과 관리 양쪽에서 모두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 보기 드문 리더다. ‘수익성을 회복시키는 뚝심 있는 리스트럭쳐링(구조 조정)’이 그의 장기다.

전략실을 나와 첫 CEO로 데뷔한 조선호텔앤리조트에서 한 대표는 코로나 기간에 추가 출점을 내는 역발상으로 미래의 초석을 다졌다. 2020년 10월에만 그랜드 조선 부산,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조선 명동을 오픈했다. 그해 12월 그래비티에 이어 2021년 1월과 5월엔 각각 그랜드 조선 제주, 조선 팰리스를 선보였다.

신세계그룹의 대표 행사로 자리매김한 쓱데이도 한 대표가 2018년 당시 그룹 전략실의 CFO로서 힘을 실어줌으로써 정상 궤도에 올랐다는 것이 그룹 내부의 평가다. ‘전략실 시절의 한채양’은 신세계백화점의 효자인 강남점이 입주한 센트럴시티를 인수해야 한다고 건의하고, 실제 관철하기도 했다.

한 대표는 신세계그룹에 과장으로 입사했다. 첫 직장은 SK그룹이었다. 신세계에 입사하기 전엔 스타트업 창업가이기도 했다. 반포 전략실에서만 십수 년을 근무하면서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만든 그룹의 가치와 비전을 체득했다. 신세계 임원 중엔 아주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간의 경력과 이력을 감안하면 위기의 이마트를 다시 제자리에 올려놓는데 이만한 적임자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대표의 리스트럭쳐링만으로는 이마트가 만루홈런을 때리기는 어렵다. 오프라인 매장을 다시 방문해야 할 이유, 다시 말해 ‘리스토어’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을 때에만 이마트의 반전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혼부부, 1인 가구, 온라인 쇼핑에 지친 1020도 이마트 매장에서 매력을 느끼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주가도 오른다. 결국 이 문제는 ‘고객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천명했던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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